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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재발견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

by 구짱 이갈용 2024. 11. 1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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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을 훗날 역사가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까?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을 뿐인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기조가 달라졌다.
불과 몇 년 전 사회갈등을 해결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어마하다는 뉴스를 들었었다.
이번 정권에는 그 비용이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고, 그 비용에 붙어먹는 기생충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긴, 거기뿐이겠는가? 
어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있어 비용지출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기회로 삼아 폭리를 취하려 하는 작자들이 맨 위부터 있으니 뒤탈이 안 생기겠는가?
화무십일홍이고 권불십년이라 했다.
전직 대통령들의 전례를 보았을 때 3년 뒤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게 될 것인가?
 
고려사의 재발견을 읽으면서 현재의 상황을 자주 떠 올리게 되었다.
인권, 환경, 양성평등을 비롯해 시민의 존재와 민주주의 가치가 고양되고 대립하고 토론하는 지금이다.
다양성, 개방성,역동성을 덕목으로 하는 다원사회의 모습이 정치와 사회, 사상과 문화 등 다방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저자의 고찰처럼 우리가 21세기 새로운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를 고려라고 말한다.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이어 받은 고려 다원사회의 역사 경험을 공유한 이력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역사의 중요성을 잘 설명한 저자의 글이다.
"현재와 미래의 삶과 무관한 역사는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
현재, 미래와 연결되지 않은 과거는 죽은 역사에 불과하다.
나와 우리 사회와 국가의 현재, 미래와 연결되는 역사라야 비로소 의미를 지니고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과거를 읽고 반추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다.
살아 있는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역사이다.]
 
고려사의 재발견 책에는 기존 세력과 신진 세력과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기록들이 주를 이룬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방 호족들과의 결혼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처음에는 약발이 먹혀 들어갔지만 사 후 지방호족들은 외척이 되어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를 죽인다.
왕 그리고 권력 옛날부터 우리는 싸우고 죽여왔다.
그리고 외침을 당하면 잠시 싸움을 내려놓고 하나되어 항쟁했다.
지금의 우리도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도 여야는 서로를 죽이기 위해 공격하고 방어한다.

이 책은 7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천하통일, 새로운 시대를 꿈꾸다.
궁예, 왕건, 견훤 후삼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3명의 인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상주의자 궁예, 변방의 장수에서 전쟁 영웅이 되는 왕건, 내분으로 쓰러지는 견훤 그리고 회복불가 신라!
고려의 건국 과정 그 뿌리와 역사에 대해 알려준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근거가 확실하다.
2부 개혁과 개발, 고려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다.
태조 왕건 사 후 권력을  잡기 위해 고려버전 왕자의 난이 정치질서를 흔든다.
호족 세력들은 자신의 왕을 세우기 위해 난을 일으키고 왕권은 점차 약화된다.
이에 왕들은 개방정책을 통해 새로운 세력들을 지원하고 기존의 세력들을 견제하는 방식으로 왕권을 강화한다.
중국 출신 귀화인들을 관직에 앉히고 노비안검법, 과거제 도입 등이 그 방식의 일환이다.
사실 머 단일민족론이란 단어의 재검토가 시작되는 시점은 아마도 이때가 아니었을까?
"한 말에 근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강조한 선험적이고 관념적인 역사 인식의 산물이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단일민족론의 기준은 동일한 핏줄,문화,지역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변화, 발전하는 것이다."
3부 다양한 사상과 문화, 다원사회를 이루다.
지방 세력들을 통합하기 위해 본관제도를 만들고 과거제는 완전히 정착된다.
또한, 유교를 통해 성행하던 근친혼을 몰아내고 통치이념으로 삼는다.
또 다른 종교 불교는 민생에 전파하여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고려는 다양한 사상과 종교가 충돌하지 않고 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팔관회를 열고 낭가사상도 중시하는 훈요십조를 따르려 한 것이다.
4부 고려의 실리외교, 영토분쟁의 위기를 극복하다.
서경 천도는 권력 이동을 시도하려 한 사건이다.
고려의 왕들은 왕권강화를 위해 주구장창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권력을 향한 내부 분열도 고민이었지만 외척윽 침입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여진, 거란, 몽골, 왜구 게다가 송,명,청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전환까지 말이다.
영토분쟁을 위해 외교전쟁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자신들만의 군사를 조직하기 위해 관료집단들끼리 싸움박질만 한다.
외척을 막아내면 무엇하랴? 승승장구하는 장군을 관료집단들이 헐뜯고 비난하여 처벌을 유도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부국강병책은 실패로 끝나고 문신과 환관들 중심의 관료집단들의 위세는 더 올라간다.
5부 무신집권기의 고려를 다시 읽다.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 몇 대에 걸쳐 왕의 외척으로 천하를 호령하려 한 이자겸
그리고 측근 세력의 권력 다툼으로 시작된 무신정변에서 나온 이의민, 최충헌, 최우, 최항 등
절대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대량 학살도 서슴치 않았던 그들!
아이러니하게도 무신들은 권력을 잡자마자 천거제를 통해 자신들의 치적을 정당화시켜 줄 문신들을 뽑는다.
금속활자술 같은 기술들이 이 시절에 꽃을 피워냈다는 것은 무신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몸무림이 아니었을까?
6부 원 간섭기, 기회와 희망의 시대를 열다.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는 쑥대밭이 된다.
강화도로 피난가고 고려여인이 끌려가서 왕후가 된다.
몽골이 원나라가 되고 형제맹약을 통해 고려왕조를 유지하지만 지배당한다.
왕은 원나라 공주와 결혼히니 원나라황제의 부마가 되어 고려를 다스린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하층민들은 신분상승의 목적과 집단 해체로 인하여 봉기를 시작한다.
7부 고려왕조, 500년 역사를 뒤로하다.
고려의 마지막 역시 권력을 위한 싸움뿐이었다.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는 신진사대부의 우두머리가 되고 권문세족들은 사라진다.
우왕, 창왕은 신돈의 자식이라는 신진사대부들의 깎아내림은 역사는 역시 승자의 기록이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진사대부들의 개혁이 성공한 이유는 하층 관료와 군인층의 생계가 위협당하고 국가 재정을 위태롭게 했음이 그 이유다.
사회, 경제적 모순을 분명하게 인식한 것이 개혁파가 정국을 주도하고 민심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덕목이었다.
 
약 천 년 전에도 그랬다.
권력자들은 민심을 버렸다.
현 권력자들
도 민심은 듣지 않고 권력만을 탐한다.
"
입만 벌리면 구라"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개혁을 매일 얘기하지만 민심을 가라앉을 기미조차 없다.
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하기 위한 말뽐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고려 때나 조선 때나 일제강점기 때나 권력자들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살 길 알아서 찾아야 한다.
정말 살기 힘들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세상을 뒤집을 각오를 해야 한다.
승자가 되야 훗날 역사가에게 충성과 헌신을 받을 수 있다.
승자가 되기 위해 과거 역사를 읽고 현재의 흐름을 파악하여 승자의 미래로 나아가자!
 

고려사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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